곡교천 은행나무길 산책 후 심술궂은 가을 바람을 피해 카페를 찾아들었다. 따듯한 차 한 잔에 창을 통해 드는 햇살 한 줌이면 가을바람에 옹송그려진 몸이 부드럽게 펴질 듯했는데 그러기에 '아레피'는 최적의 장소였다.
Asan Levee(둑, 제방) Coffee _ 아레피
'아레피'는 한국건축문화대상, 세계건축상 등 굴지의 건축상을 받은 곽희수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곽희수 건축가는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를 대표 재료로 사용하는데 콘크리트의 중성적인 색채가 주변경관이 들어올 여지를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물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것은 건물 자체가 아닌 주변의 자연조건이라는 그의 철학에 따라 '아레피' 또한 영인 저수지와 조화를 이루며 그 건축미를 자랑한다.
내년 쯤이면 핑크뮬리도 더 화사한 자태를 뽐내겠군_
곽희수 건축가의 건축에서는 계단이 중요하게 활용된다고 하는데 계단은 하층에서 상층부를 연결하는 직접 통로이면서 개별 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인문적 의미를 수렴하는 건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레피'의 계단에는 널따란 온돌자리가 있어 계단과 계단 사이에 쉼과 여유가 고여있는 듯해 좋았다. 쌀쌀한 날 커다란 모포를 둘러싸매고 앉아 물멍을 하다 보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를 것만 같다.
더없이 평화로운 창뷰
음료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이런저런 요소들을 고려한다면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카페인에 민감해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게도 카페라떼 맛은 맨숭맨숭했다. 루이보스 맛이야 어차피 티백이니까 그렇다 치고. 요즘 홀릭 중인 소금빵은 너무 딱딱해서 별로였고 최고가를 자랑하는 빵 종류였던 감자소시지빵은 맛있었다. 으깬 감자와 치즈, 소시지라면 사실 맛 없을 수 없는 조합. 사실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음식을 입에 넣기 전 받은 서비스 불만족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평소 서비스 직종의 고충은 인지하고 있지만 직원에게서 '일하기 싫다'는 기운이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면 고객 또한 그에 조금쯤은 영향을 받게 되니까 말이다.
평일 오후 느즈막이 찾아 한산했는데 곧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해 우리는 자리를 떠났다. 일몰 무렵 다시 한번 오고 싶다는 생각을 남겨두고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