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 의 작품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집을 검색하던 중에 이 소설집을 발견하게 되었고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제목은 한치의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는 강렬한 매력을 내뿜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펼쳐든 소설집의 첫 작품이 데니스 존슨의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였는데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는 문장은 이 작품에서 발췌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 제목이 뭔가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거나 서정적이고 시적인 장면의 묘사일 줄 알았는데, 마약 중독자의 감각확장에 의한 환각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어서 조금은 실망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작품, '어렴풋한 시간'(조이 윌리엄스)은 굉장히 지난했다. 소설의 내용 자체가 복잡하고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장면묘사나 심리묘사가 이질적이고 난해해 뭔 소리야, 하며 반복해 읽어야 해서 집중하기 어려웠다. 마치 '이상'의 시를 읽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 소설집을 엮은 '파리 리뷰'는 1953년에 창간한 미국의 문학 계간지이다. 잡지의 편집자들에 따르면 이야기를 쓰는 방식은 다양하고 언어에는 한계가 없기에 탁월한 작가는 모두 자신만의 규칙과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한다. 따라서 '파리 리뷰'는 그런 작가들을 위한 실험실 역할을 자처한다고 말이다. 아마도 그런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 조이 윌리엄스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친절하지만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문체는 누군가에는 강렬한 호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 또한 15편의 소설 중에서 '어렴풋한 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고 말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소설집 커버에 이름이 박힌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 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는 독특한 소재로 흥미를 끌었으나 강렬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독 소설집을 빨리 읽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이 독특한 15편의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술술 잘 읽히며, 직관적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은 이선 캐닌의 '궁전 도둑'과 에번 S 코널의 '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였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미국 사회 상류층의 위선과 허위를 잘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궁전 도둑'은 2003년에 '엠퍼러스 클럽'이라는 타이틀의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차후에 감상해보고자 한다.
하나의 단편 소설집을 읽고 나면 그 작품의 수만큼 인생을 살아낸 기분이 든다. 그것이 단편 소설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소설 곳곳에 남겨진 여백은 스스로 채우며 오늘도 나의 인생은 소설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