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맛집> 압구정 한추
삼 년 만에 만나는 Y에게 압구정역 맛집이라는 '한추'를 아느냐고 물었다. 서울에 자리잡은 지 오래된 그녀는 당연히 알고 있다며, 맛있는 곳이니 함께 가자고 했다. 본인은 예전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항상 2차나 3차로 취한 채 갔기 때문에 사실 음식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목요일 오후 4시, 어중간한 시간대에 맞춰 갔는데도 매장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저 웨이팅 없이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벅찬 기쁨을 느끼며 술과 함께 음식을 주문했다. 대표메뉴 중 하나인 치킨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여자 두 명이서 메뉴 세 개는 소화해낼 수가 없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꼭 먹어보고 싶었던 고추튀김과 기름의 느끼함을 잡아줄 매콤한 떡볶이를 시켜 소주와 한상 차려놓으니 군침이 절로 돌았다.


떡볶이는 일반적인 양념의 맛이 아니었다. 요즘 떡볶이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떡볶이 맛이 상향평준화되었다. 어느 매장에서 먹든 웬만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한추의 떡볶이는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지만 떡볶이로는 처음 접하는 맛. 그래서인지 술안주로 더 잘 어울렸고 부추와 팽이버섯, 당면도 양념장과 조화롭게 어울려 맛있었다. 특히 떡이 밀떡이 아닌 쌀떡인 점이 좋았다. 나이가 들면 밀가루를 소화하기 힘든데 아무래도 쌀이라 부담이 덜했다.
먹다 보니 배가 불러 떡볶이를 남기고 왔는데, 한동안 그 남은 음식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했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마성의 맛을 지닌 떡볶이랄까.

나는 고추튀김을 좋아해서 자주 사먹는 편인데 제대로 만든 고추튀김을 맛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용물이 부실하거나 고추의 질감이 나쁘거나 꼭 흠 잡을 데가 생긴다. 그런데 한추의 고추튀김은 고기를 꽉꽉 채워 풍성했고 고추를 씹을 때 질감도 좋아 만족스러웠다. 과장을 더해 말한다면 지금까지 먹어본 고추튀김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저걸 먹으러 천안에서 서울까지, 또 가자고 한다면 선뜻 따라나설 수 있을 듯하다.

언젠가부터 '노포' 스타일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노포가 뭐지? 궁금해하기만 하고 따로 의미를 찾아보지 않다가 우연히 검색을 통해 '노포(老舖)'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고 그 세월의 흔적이 매장 곳곳에 묻어있는 식당이나 주점을 노포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한추 또한 압구정 터줏대감으로서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으니 노포 식당이라고 불릴 만하다. 가게 내부도 낡은 듯 친근감이 느껴지고 말이다.
평일 오후, 이십대부터 육십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왜 이 곳의 이름이 '한 잔의 추억'인지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나도 오랜 친구인 Y와 함께 소주 한 잔에 추억 한 장을 새겨놓고 훗날 이 날의 시간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