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이먼드 카버 '풋내기들'
'미국의 체호프'라 불리는 레이먼드 카버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작가적 명성을 얻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인생의 3분의 2를 궁핍하게 살며 국립기금으로 창작 생활을 영위해야 했던 그로서는 작품의 상업적 성공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성공적인 작품집이 편집자의 손에 의해 대폭 잘리고 수정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은 오리지널 버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풋내기들'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원본으로, 편집자 고든 리시의 과감한 편집이 있기 전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을 그대로 살린 작품집이다. 사실 나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두 작품의 차이점을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풋내기들'의 번역자(김우열)에 따르면 '풋내기들'은 문장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고 내용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 덜하며 인물들이 보다 감정적이고 인간적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출간되기 전 고든 리시에게 편집을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며, 만약 이대로 책이 출간된다면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업계에서 인정받던 고든 리시는 편집을 강행했고 원본에서 대폭 수정된 작품집은 단편집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작품의 성공 이후 레이먼드 카버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자괴감으로 괴로웠을까?
작품의 성공 여부를 떠나 창작자의 창작물을 거의 훼손하다시피하는 편집은 극악무도한 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동안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는데, 그 문장이 통째로 날아간다면 정말이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다행히 다음 작품집 '대성당'은 레이먼드 카버의 강력한 요구로 부분적인 편집만이 이루어졌고 평단으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퓰리처상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결국 레이먼드 카버는 그 스스로가 훌륭한 작가임을 증명해낸 것이다.
'풋내기들'은 총 1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작품 '춤추지 않을래?'부터 여섯 번째 작품 '외도'를 읽을 때까지는 조금 심드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일곱 번째 작품'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흥미있게 읽으며 작품 속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다 다음 작품인 '여자들한테 우리가 나간다고 해'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작중인물인 '제리 로버츠'의 급발진을 지켜보며 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복잡한 마음에 심란해졌다.
이런 점이 레이먼드 카버의 작가적 역량이 아닐까 한다. 현실을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그리면서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 지독한 현실 위를 부유하는 나약한 인간에 대한 차가운 시선의 관조, 그러나 그 시선 끝에 매달려 있는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연민.
가장 좋았던 작품은 '거리'인데 사랑의 덧없음을 따뜻하면서도 애잔하게 그려내 마음이 조금쯤 슬퍼졌다.
이로써 나는 완벽하게 레이먼드 카버의 팬이 되었다. 그의 작품집들을 모조리 다 찾아 읽으며 그의 작품세계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정진 또 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