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내가 처음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본 때는 스물 두 살 무렵이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때 이 영화를 보고 받은 감동은 24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를 보고 받은 감동에 비하면 현저히 그 질이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렵의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사람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그 마음을 백이면 백 다 이해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간 살아온 세월에 비례해 많은 죽음을 겪었고 그 죽음들을 통해서 조금쯤은 성숙했기에 극중 '정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는 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했었다. 그 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 '정원'의 내레이션이 여러번 등장하는데 최근의 영화기법으로 보자면 촌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나는 새삼스레 좋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한편의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만큼 '문학적'인 사건과 인물, 대사를 사용해서일 것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서먹하게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지원이는 내게 자신의 사진을 지워달라고 부탁했다.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
'정원'은 첫사랑 '지원'을 추억 속으로 밀어둔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아쉬움도, 첫사랑의 실패한 결혼생활에 대한 안타까움도 세월이 지나면 추억으로 그치기 마련이다.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내고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저 마음 깊은 곳에 걸어두고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 액자 대신에 새로운 액자에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걸어두고 후회없이 사랑해야만 한다. 정원 또한 지원의 사진이 걸려있던 곳에 '다림'의 사진을 걸어 둔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를 보고 오열한 적이 있다. '클리셰 투성이의 뻔한 로맨스'라는 평도 있지만 원래 사랑이라는 게 진부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하나의 전제를 더하자면 이루지 못한 '순수한' 사랑이다. 그래서 '20세기 소녀' 속 보라와 운호의 사랑에 눈물이 쏟아졌고 '8월의 크리스마스' 정원과 다림의 사랑에 가슴뻐근한 감동을 느낀 것이다. 순수한 사랑이 훼손되기 전, 불가피한 이유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 온전히 사랑만 있는 상태에서 모든 관계가 끝나버리는 사랑.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사랑. 그런 사랑 하나가 인생에 존재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정원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런 사랑을 간직한 채로 떠났기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가족사진을 촬영했던 할머니가 저녁 무렵 영정사진을 다시 찍으러 오는 씬이었다. 연분홍빛의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매년 제상에 오를 사진이니 예쁘게 찍어달라고 하던 모습에 눈가가 뜨끈해졌다. 가끔 핸드폰으로 내 독사진을 들여다보며 생각하곤 한다. 이 중에 영정사진으로 쓸만한 게 있을까, 하고. 사람 일이란 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늘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실존주의 심리학자 '메이'는 '죽음을 거부하는 대가는 막연한 불안이요, 자기 소외이며,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반드시 죽음에 직면하여 자기 자신의 죽음을 깨달아야 한다' 고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의연하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야만 한다. 그래서 오늘 하루만 행복하면 된다, 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다.